Desktop에서 바탕화면으로
여러분은 1995년, DOS의 시대에서 윈도우 PC의 대중화를 일으켰던 Windows 95를 기억하시나요?
연회색 빛깔의 자태에 얼핏 보면 볼록렌즈 같은 모니터 액정을 가진 뒤통수가 크게 튀어나온 컴퓨터.
그때는 최신형이었죠. 이런 최신형 컴퓨터 한 대를 장만하려고 Windows 95까지 설치하면 대략 평균 300만원 정도의 시세를 형성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당시에 이런 컴퓨터를 부모님께 사달라고 말씀드렸다가 가격을 알고 서로 크게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던 기억이 나네요.
TMI] 결국 1-2년치 학습지를 신청하고, 컴퓨터를 사은품으로 받았던 아이들이 적지않았죠..ㅎㅎ
현재 물가와 비교하면 당시에는 상당히 고가였으나,
DOS와 비교해서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한 Windows 의 UI는 가히 혁신적이었기 때문에 인기가 정말 많았어요. 미국에서 건너와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다양한 이슈가 있었을테지만, Windows 사용자가 보는 핵심용어(영어)들을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할 것 인가가 당시에 가장 큰 화두였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파파고도 없었잖아요.
이러한 상황에서 윈도우가 국내에 정착하는 모든 과정을 20대 청년이 불철주야 최전방에서 직접 현지화 번역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위대한 번역 작업의 중심에 계셨던 1세대 번역사 노재훈 대표님을 모시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포스팅을 보시는 여러분들께 진정한 라떼(?) 이야기가 다양한 인사이트로 전달되기를 희망해봅니다. :)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와이즈에스티글로벌 대표이사 노재훈입니다.
94년부터니까, 거의 30년 가까이 번역 업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번역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소설, 영화 번역 또는 공증 번역을 생각하실텐데요.
제가 하는 일은 삼성전자,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같이 글로벌 시장에서 제품을 팔기 위해 제품 및 콘텐츠를 현지화하는 번역, 즉 로컬라이제이션입니다. 여러분들의 Windows를 한글로 보고 계실텐데요, 영어로 제작된 제품을 한글화하는 업무입니다.
💡로컬라이제이션: 제품/서비스를 특정지역의 문화/법률/언어 등 기술 요구사항에 맞게 개정하는 현지화 작업
번역이란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제가 군대에 있을때부터일지 모르겠네요.
93년도 한국군 최초로 UN에 파병했던 소말리아 평화유지군 상록수 부대에서 통역병으로 근무했었습니다.
Q. 소프트웨어 번역은 일반 번역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여러가지 차이점이 있는데요. 우선, 문맥을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메뉴명과 같은 것은 실제 해당 소프트웨어를 실행해보지 않고서 어떤 동작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소프트웨어 번역을 UI (User Interface) 번역이라고 부르는데요. UI에는 메뉴, 버튼, 대화상자, 메시지, 알림 등 여러 요소들이 있으며, 특정 문자열이 어떤 요소에 속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Open file 이라는 문자열이 메뉴라면 "파일 열기", 메시지라면 "파일을 엽니다."와 같이
다르게 번역되어야 하죠.
소프트웨어 번역에서 요구되는 번역 스타일도 일반 번역과 다릅니다.
일반 번역은 창의적인 번역, 의역 등이 많이 요구 되는 반면, SW번역은 원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며, 번역사의 주관적인 의역보다는 보편화된 객관적인 번역이 필요합니다.
또한, 동일한 용어에 대한 일관성도 매우 중요합니다.
즉, Fluency 보다는 Accuracy와 Consistency가 더욱 강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S/W를 번역하셨을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제가 Microsoft에서 Windows 95를 한글화하면서 아마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화 된 표준 용어는
대부분 이 시기에 많이 만들어졌을겁니다.
Windows 95는 이전 DOS 환경과는 차원이 다른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던 시스템으로,
Object라는 개념과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처음 도입된 운영체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가지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Windows를 하루에도 수차례 설치하고 지웠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여러가지 새로운 개념 중에 Shortcut 이라는 것이 있었는데요. Shortcut을 만들어보면 바탕화면에 화살표가 달린 아이콘이 만들어지고, 이 아이콘을 클릭하면 바로 프로그램이 실행되었죠.
그래서 이것을 "단축아이콘"이라고 처음엔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Internet Explorer 1.0이 나오고, Shortcut은 더 이상 아이콘의 형태만이 아니라 링크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낭패인거죠. 그래서 이후에 Shortcut 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아시나요?
Favorite(즐겨찾기)와 함께 "바로가기"라는 멋진 한글 용어가 만들어졌습니다.
바로가기와 함께, 바탕화면, 즐겨찾기라는 용어가 만들어졌고,
이 용어들이 제가 만든 한글 용어 중 가장 멋진 역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ㅎㅎ
Desktop(바탕화면), Shortcut(바로가기), Favorite(즐겨찾기)의 적절한 한글 표현이 없었기에 무척 오랜 시간 고민했던 단어입니다. 이 세 가지 개념은 기존에 없었던 것이라 개인적으로 좀 더 의미가 있게 다가옵니다. 바로가기와 즐겨찾기는 동시에 탄생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축아이콘", "자주찾는항목"으로 번역되었다가, 기능과 맞지 않거나 좀 더 함축적이고 간결한 명사형 용어를 찾고 있었죠.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올바른 한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한국지사의 개발부에는 한글화를 지원하기 위해 국어학과 교수님의 자문을 받고 있었는데요, 교수님과 상의하다가 "~하기"를 붙이면 간결한 명사형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착안해서 이 두 단어가 떠올랐죠.
Desktop이란 용어는 일반적으로 PC를 의미하잖아요?
여러분은 Desktop 이라는 영어 단어에서 "바탕화면"이 유추되시나요? 영어 단어에 갇혀있으면 결코 이 말을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바탕화면".. 개인적으로는 이보다 더 좋은 단어가 있을까 싶습니다. ㅎㅎ
👇소프트웨어 번역과 관련해서 궁금하신 부분은 연락주세요!
Q. 대표로 계신 WiseTranslate의 서비스 소개 부탁드려요.
와이즈는 2000년도에 창업하여 20년 넘게 로컬라이제이션 사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우버, 에어비엔비, 익스피디아 등 글로벌 고객과 한화, 삼성, 현대 등 국내 기업의 글로벌 현지화 번역을 돕고 있습니다. 지금은 구글 신경망 번역기를 기반으로 문서번역 서비스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Q. 문서 번역은 어떤 서비스 인가요?
2016년 구글이 발표한 딥러닝 기반 신경망번역기는 지난 수십년간 답보 상태에 있던 기계번역의 한계를 단숨에 뛰어넘었습니다. 고객이 번역 품질을 평가할 때 "구글 번역 같아요"라고 하면 예전엔 부정적인 표현이었지만 이 시점부터는 더 이상 그렇게 폄하할 수 없게 되었죠. NMT 기계번역이 점차 상업적인 가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신경망번역기는 계속 발전을 거듭해서, 경우에 따라 사람 번역과 전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구글 번역을 활용하는 방법은 단순히 텍스트 몇 줄을 복사해서 번역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고, 수십 수백페이지 자료를 번역하려면 복사/붙여넣기만 몇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죠. Word, Excel, PowerPoint, PDF 등 다양한 문서를 통째로 번역해주는 솔루션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WiseTranslate 문서번역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서비스입니다.
Q. 어떤 분들께 좋은 서비스 인가요?
대용량 문서의 내용을 빨리 파악하고 싶은 분들이죠.
예를 들어, 해외 논문을 자주 참조해야하는 대학원생, 연구원, 엔지니어 등이 있겠고요. 해외 시장에 대한 리포트, 글로벌 고객 분석이 필요한 기업 담당자분들에게도 유용한 서비스입니다. 현재 약 8,000여명의 가입자가 있는데요, 공공기관에 계시던 기관장님께서 WiseTranslate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으셔서 수천 페이지가 넘는 해외 시장 조사 자료를 번역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Q. 향후 번역 서비스의 전망은 어떻게 보세요?
기계번역의 성능이 계속 좋아지고 있지만, 그 한계도 아직 있습니다. 기업이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거나 사용자 설명서를 번역하는데 기계번역에만 의지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제품의 중요 기능을 설명하는데 오역이 있어서 사용자가 큰 피해를 보게된다면 기업은 제조물 책임법에 따라 심각한 소송 위기에 놓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 기계번역과 사람번역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서비스가 현재와 향후 번역 시장의 주된 흐름이 될 것입니다.
Web3 시대가 시작되면 메타버스 공간을 활용해서 기업들은 마케팅을 펼칠 것이고, 이 공간에서는 정적인 텍스트가 아니라 오디오비주얼 콘텐츠로 고객들과 소통하게 될 것입니다. 언어 현지화는 무엇보다도 고객 경험이란 측면에서 더욱 강조될 수 밖에 없으며, 단순 번역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지역적으로 올바른 현지화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색상, 손짓, 심볼 등 잘못 사용하면 지역/민족에 따라 완전히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오디오비주얼 콘텐츠 로컬리제이션 솔루션을 개발하고 글로벌 번역사 네트워크를 묶어서 고객 경험 중심으로컬리제이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로컬리제이션 시장은 현재 기준 약 500조가 넘는 시장이며, 수많은 번역사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존 번역 시장의 수동적 용역 서비스에서 탈피하여 번역사 스스로 크리에이터로써 번역 콘텐츠를 생산하고, 이렇게 제작된 콘텐츠의 저작권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보호하고 유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기반의 플랫폼을 만들고 싶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아래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다음 포스팅에서 만나요-
*해당 콘텐츠는 지콘스튜디오에서 레터웍스로 이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