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인공지능의 역사를 이야기하면 앨런 튜링이나 다트머스 회의에서부터 시작하곤 합니다. 1954년 앨런 튜링이 세상을 떠났고, 1956년 다트머스 회의가 열렸으니 따지고 보면 채 100년도 되지 않았죠. 그렇지만 인공지능이란 개념을 조금만 더 확장해 다시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앨런 튜링은 물론 다트머스 회의에 모인 학자들까지 모두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인류는 더 오래전부터 자신을 닮은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어했죠. 고대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에 대한 수 많은 질문과 고민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이번에는 지금까지의 이성적, 수학적, 과학적, … 관점이 아닌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AI의 역사를 되돌아보려 합니다. 예를 들면 신화적, 종교적, 철학적, 인문학점 … 관점에서 말이죠. 따지고 보면 AI라는 개념은 오래 전 사람을 닮은 존재를 만들고 싶어한 누군가의 상상에서부터 시작되었을 테니까요.
호메로스가 상상한 인공지능
“그는 해면으로 얼굴과 손과 튼튼한 목과 털이 많은 가슴을 닦고 옷을 입더니 단단한 지팡이를 들고 절룩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러자 황금으로 만든 하녀들이 주인을 부축해주었다. 이들은 살아 있는 소녀들과 똑같아 보였는데 가슴 속에 이해력과 음성과 힘도 가졌으며 불사신들에게 수공예도 배워 알고 있었다.” (일리아스, 천병희 역)
이상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의 한 장면입니다. 불의 신이자 대장장이인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는 황금 하녀에 대한 설명이죠. 인간에 버금가는 이해력과 언어 능력, 힘은 물론 정교한 작업 능력까지 갖췄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 그리 낯설지 않게 느껴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공지능에 기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아니, 오히려 오늘날 인공지능을 뛰어넘는 훨씬 강력한 존재를 떠오르게 합니다.
고대 그리스 음유시인의 상상력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튼튼한 마루의 벽에 세워 두려고 모두 스무 개의 세발솥을 만들고 있었는데, 세발솥마다 밑에 황금바퀴를 달아 저절로 신들의 회의장으로 갔다가 도로 그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놓았으니 보기에 장관이었다.“ (일리아스, 천병희 역)
호메로스의 상상력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는 존재까지 만들어낸 것입니다. 바로 고대인에게 중요한 의례인 제사를 위한 일종의 자동주행시스템을 고안한 거죠. 이 기술은 아직까지도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대 그리스인의 상상력이 오늘날의 기술력을 앞서간 것입니다.
신의 명령으로 만든 인공지능
“곧바로 제우스는 불에 대한 벌로 인간에게 내릴 재앙 하나를 생각해 냈다. 그리하여 영광스러운 절름발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의 계획에 따라 흙으로 정숙한 처녀의 상을 하나 빚어냈다. 그리고 눈이 빛나는 아테나 여신은 그 상에 광택이 나는 옷을 입혀준 다음 허리띠를 둘러주고, 머리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공들여 수를 놓은 면사포를 드리웠다. 정말 그냥 보기에도 아까운 모습이었다.” (신통기, 김원익 역)
이런 관점에서 보면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 ‘판도라’ 역시 새롭게 보입니다. 판도라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일종의 인조인간이거든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건네준 것에 화가 난 제우스가 온갖 재앙으로 가득 찬 항아리******와 함께 보낸 판도라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완벽에 가까운 안드로이드로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섬의 경비를 맡은 인공지능
“크레테에서는 탈로스가 접근을 막았다. … 그는 청동으로 된 사내로서 … 목에서 발목까지 뻗어가는 하나의 혈관을 갖고 있는데, 그 혈관의 끝 부분은 청동 못이 막고 있다. 이 탈로스는 날마다 세 번 섬을 돌아 달리며 지켰다.” (신화집, 강대진 역)
그리스 신화 속 탈로스*******는 크레타 섬을 수호하는 청동 로봇입니다. 그 역시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에 의해 만들어졌죠. 섬에 상륙하려는 배가 보이면 바위를 던져버리고, 상륙한 적은 자기 몸을 뜨겁게 달궈서 끌어안아 제거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신화에 묘사된 탈로스는 단순한 기계장치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지능형 로봇이었죠. 영생에 욕심을 부리다 메데이아*******에게 속아 최후를 맞이했고, 눈물을 흘리는 등 자유의지와 감정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담긴 인공지능에 대한 상상들을 들여다봤습니다. 오늘날 이야기하는 약인공지능은 물론 강인공지능에 해당하는 다양한 존재들이 등장하였죠. 이렇듯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공적인 존재에 대한 인간의 상상은 생각보다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렇듯 인공지능은 인간의 상상력에서 싹을 틔워 신화와 서사로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와 현재는 물론 미래를 함께하게 될 인공지능의 원형이겠죠. 또한 이런 생각들이 있었기에 ‘계산하는 기계’가 ‘생각하는 기계’가 되는 그날을 꿈 꿀 수 있게 된 것이고요.
이번을 시작으로 오늘날 인공지능이 있게 한 다양한 생각들의 발자취를 쫓아가보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References
[1] 인공지능의 역사:서사적 허구, 문화 상품, 그리고 과학적 사실로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465277
[2] 신과 로봇·센시언트 머신 https://www.yna.co.kr/view/AKR20200624080100005
[3] https://en.wikipedia.org/wiki/Artificial_intelligence#History
[4] [칼럼]‘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산업혁명 http://www.kbank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064
[5] [매경춘추] 황금 하녀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1/05/509018/
[6] 인공지능의 철학적 성찰 http://www.aistudy.co.kr/paper/culture/philosophy_lee.htm
함께보면 좋은 콘텐츠
[AI 이야기] 인공지능의 결정적 순간들 1[AI 이야기] 인공지능의 결정적 순간들 2[AI 이야기] 인공지능의 결정적 순간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