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9일 알파고가 최고의 바둑 기사인 이세돌 9단을 상대로 4승 1패로 이긴 당시, 조만간 많은 분야에서 인간의 자리를 AI가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위기감이 가장 크게 다가온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번역이었습니다.
그동안 기계 번역기가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을 쫓아 오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기계 번역기도 사람처럼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번역 업계에서는 '그럼 앞으로는 번역 회사와 번역가들이 필요 없어지는 것 아냐?'라는 실질적인 우려와 불안감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그 전망은 '절반의 정답과 절반의 오답'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절반의 정답, 사양하는 번역 시장
구글 번역 이랑 똑같네요?
'사양하는 번역 시장', 정확히는 사양하고 있는 '사람 중심의 번역 시장'이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번역을 맡긴 의뢰인의 번역 회사(번역사)에 대한 흔한 불만 중 하나가 "구글 이랑 똑같이 번역 했네요. 너무 신경 안 써주신 것 아니에요?"라는 겁니다. 이런 불만이 튀어나오는 원인에는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번역사가 직접 번역했는데 우연히 구글 번역기와 비슷하게 나와서 오해를 산 경우와 두 번째, 실제로 번역사가 구글 번역기를 참고하여 번역해서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겉으로 보이는 현상은 달라 보여도 결국 두 가지 경우 모두 구글 번역의 결과물이 번역사의 그것에 근접하거나, 전문 번역사도 참고할 정도로 발전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구글 번역기의 성능과 품질이 높아짐에 따라 자연스레 따라온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간혹 촉박한 납기 일정에 맞추기 위해 번역기를 돌려 번역하고, 검수도 못한 체 바로 납품해서 일어난 안타까운 경우일 수도 있겠네요.
기계 번역에 대체되는 번역회사?
구글 번역 같은 기계 번역기가 많은 사람들의 외국어에 대한 답답함을 해결해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조만간 따로 공부할 필요없이, 누구나 외국어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냐?"라는 상상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네이버, 카카오 같은 IT 공룡들이 기계 번역의 원천 기술을 끌어올리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고, 그 결과 특정 언어 또는 제한된 환경에서는 구글 번역기보다 좋은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번역이 필요한 수요자 입장에서도 실시간으로 원하는 수준의 번역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기계 번역이 별도의 비용과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번역 회사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바이링구얼(bilingual)에 대체되는 번역회사?
모든 유학생들이 바이링구얼(2개 국어 사용자)일 수는 없지만, 매년 20만명에 육박하는 학생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가 유학생이라면 기본으로 해본다는 '번역 알바'를 합니다.
한편 국내로 유학을 오는 외국인 학생 수도 역대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습니다. 지난해(2019년) 기준 약 16만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고, 이들은 국내 번역 회사의 좋은 파트너(자원)가 되고 있습니다.
* 출처 :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030
우수한 외국어 능력을 갖춘 번역사 풀이 커진다는 것은 분명 번역 회사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프리랜서 직거래 플랫폼들(크몽, 숨고 등)의 성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사실 번역 회사 입장에서는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게다가 프리랜서 플랫폼에서는 번역 거래의 시작과 납품의 모든 과정을 데이터로 저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프리랜서의 평판을 포함한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해당 작업에 더 적합한 번역사를 추천해주면서 고객들로 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트는 다음주에 '성장하는 사양산업(斜陽産業), 번역시장 (2)'로 계속 이어집니다.
*해당 콘텐츠는 지콘스튜디오에서 레터웍스로 이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