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번역 회사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아, 그럼 번역을 하시는군요.”가 아닐까 싶습니다. 번역 PM은 이런 반응에 대해 자세히 설명 하자니 말이 길어질 것 같고, 또 설명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번역 업계를 모르는 사람, 또는 번역 업계에 있지만 번역 PM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번역 PM이라는 직업을 궁금해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번역 PM이 번역 업계를 받치고 있는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직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번역 업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번역 PM의 대외적인 존재감은 아직 부족한 편입니다.
이런 번역 PM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지콘스튜디오가 현직 번역 PM을 인터뷰했습니다. 과연 번역 PM 이란 어떤 직업이며, 또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번역 PM으로 일하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안녕하세요, 렉스코드 번역사업팀 방다솜 입니다. 시간이 참 빠르네요. 길지도 짧지도 않은 5년차 번역 PM입니다.
Q.
번역 PM이 되신 계기가 있을까요? 원래 번역 자체에 관심이 있으셨는지?
사실 번역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번역 PM이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 저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고 고등학교 때부터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학생 때도 음악 가사나, 애니메이션 자막을 번역하는 작업을 취미로 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취업 시기에도 언어적인 능력을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우연히 현재 회사의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된 게 시작이었습니다.
Q.
모든 일에 처음이 있듯이, PM님도 처음 번역 PM으로 일하셨을 때가 있을 텐데요, 초보자로서업무에 임하면서 했던 실수나 이 직업에 보람을 느낀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실수도 굉장히 많이 했죠.ㅎㅎ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도 번역 PM에 대한 기초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당황스러운 실수도 많았는데요, 그 실수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보람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입사하고 2개월 만에 모 게임회사의 게임 번역 프로젝트를 맡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처음으로 저에게 맡겨진 단독 프로젝트라는 생각에 들떠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게임 번역을 하는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특히나 캣툴이 빛을 발하는 분야가 게임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는 캣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였고, 회사에서 기초 교육을 받은 정도였어요. 중복을 잡는 방법, 세그먼트 룰, TB 관리 등등… 용어만 알음알음 알던 초보자가 게임 번역 프로젝트를 핸들링하게 된 거죠. 그렇게 용감하게 시작한 프로젝트는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게임 캐릭터 이름조차 통일되지 않았고 수많은 게임 코드들과 번역문이 섞이는 현상이 발생했어요. 그리고 중복이 제대로 걸러지지 못해 같은 안내 문구임에도 번역이 달라지는 상황까지… 정말 번역물을 납품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저는 납품일을 일주일 남겨두고 멘붕 상태에 빠졌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프로젝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고, 부랴부랴 캣툴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구글링하고 캣툴 측에 영어로 메일을 작성해서 보내고… 바로 해결이 불가능한 부분은 수작업을 해서라도 번역사님과 논의하며 문장을 수정하고 맞춰 나갔습니다. 납품까지 매일 새벽에도 작업했는데요, 울기도 정말 많이 울었고 제 납품이 늦어지면 게임 출시일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면서 작업했죠.
다행스럽게도 납품일까지는 무사히 완성을 할 수 있었고, 고객 담당자분께는 위 상황도 전달드리면서 혹시 모를 수정 작업에 대한 대비와 사과를 10번 넘게 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그 후에도 몇 번 QA 작업은 거쳤지만 큰 문제 없이 프로젝트는 마무리 되었고 게임도 무사히 런칭되었습니다. 교육보다는 실전이라고 할까요, 덕분에 전 캣툴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고, 한동안 그 게임을 주위에 엄청나게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Q.
번역 PM은 번역사와 가장 가깝게 일을 하면서도 실제로 대면 하기는 어려운 조금은 특수한 관계인 것 같습니다. 번역사와 함께 잘 협업하기 위해 신경 쓰는 것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 이유와 관련 에피소드, 본인의 노하우, 팁 등이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대부분 ‘문자’로만 소통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람은 목소리 톤과 표정, 제스처와 같은 시각적 소통이 생각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번역사분들은 이메일이나 메신저 위주로 소통을 합니다. 많지는 않지만, 전화 통화를 극도로 꺼리는 분들도 있고요.
전 이런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사와 미안함의 표현을 반드시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감사합니다’ 혹은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번역사분들은 번역 PM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고객이자 동료이고, 번역사분들도 마찬가지로 저희가 중요한 고객이자 동료입니다. 즉,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죠. 흔히 PM들이 많이 하는 실수가 번역사와 갑을 관계를 형성하는 것인데, 물론 서류상으로는 계약 관계에 있지만 본인이 갑인 계약이라고 해서 을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을이 맞춰줘야 하는 일로 취급하게 되면 많은 부분이 어긋나게 되고 힘들어집니다.
저는 되도록 번역사분들께 감사하다는 말과 번거로운 프로젝트를 맡길 때는 죄송하다는 말을 함께 하는 편입니다. 번역사분들도 다들 아시죠,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번거로운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도요. 그렇게 같이 신뢰 관계를 쌓아 나가면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고, 그 후에는 서로 협업하기 수월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번역 회사는 주로 메일과 전화를 통해 소통하고 업무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요즘 다양한 캣툴을 비롯해, 번역 회사 내부에서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통해 번역 프로젝트를 처리하는 곳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용하시는 번역 솔루션(툴)이 있나요? 있다면, 사용해본 소감과 장단점은 어떤 것이 있나요?
저는 회사에서 직접 개발한 TMS와 캣툴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개발한 TMS는 직접 고객이 접속해서 견적을 생성하고, 진행부터 납품까지 모두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조입니다. TMS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메일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프로젝트 관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 프로젝트마다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메일은 아무래도 여러 상용 어구나 서명 등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문장들이 있고 그만큼 시간이 더 소요되는 점이 있는데요, TMS를 사용하게 되면 메일이라는 제약이 없다 보니 정말 필요한 내용 위주로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시간이 절약되었습니다. 고객 입장에서도 예전에 납품받은 파일을 찾으려고 메일함을 검색하는 것보다 본인이 언제든지 접속해서 다운로드할 수 있는 TMS를 활용하는 게 훨씬 시간이 절약되고 편리하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프로젝트 관리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효율적 입니다. 이전에는 개인적으로 One Note나 구글 시트, Notion처럼 여러 컴퓨터에서 동기화가 가능한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프로젝트 정보를 기록하고 양식을 만들어 사용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양식을 새로 생성해야 한다는 점이나 추후 프로젝트 히스토리를 찾으려면 메일함과 프로그램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용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죠. 하지만 TMS 안에서는 납품 일정과 진행 프로세스를 한 번에 관리할 수 있어서 굳이 여러 프로그램을 열어놓고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TMS의 단점이라면, 웹 기반 솔루션이라는 점입니다. 간혹 공공기관 혹은 대기업에서는 보안 문제로 특정 웹 사이트를 제외한 웹 사이트를 차단하는 경우가 있고, 이럴 때는 TMS에 접속할 수 없기 때문에 고객과는 다시 기존 방식인 이메일 형태로 작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캣툴의 장점은 TB/TM 관리, 손쉬운 QA 작업이 대표적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한 고객사 안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콘텐츠는 유사한 내용이 많은데, 이럴 때 TB/TM 관리가 잘 되어있으면 통일성을 쉽게 유지할 수 있고, 기존과 다른 번역사가 작업을 해도 품질 불만족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QA 기능이 생각보다 잘 되어 있어서, 일반 워드 파일에서는 비교하기 어려운 숫자 오탈자나 그 외 띄어쓰기 오류 등도 잘 잡아낼 수 있습니다. 모든 QA가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캣툴로 작업 후 한 번 QA를 거치고 다시 최종 파일에서 QA를 거치면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단점이라면 알파벳 기반으로 만들어진 툴이라 아직 아시아 언어권에서는 오류가 많다는 점입니다. 앞에 설명한 QA 기능도 아시아 언어권일 때는 잘 동작하지 않거나, 오류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모두 오류로 잡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숫자 1을 한자 一로 번역했을 때 숫자 누락으로 표시되는 것이죠.
그 외에도 여러 장단점이 있겠지만 여기서 다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ㅎㅎ
Q.
이런 솔루션이나 툴을 사용해보는 이유는 그만큼 업무 상에 불편함을 느낀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 같은데요, 실제 업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업무상 가장 어려운 부분은 품질 관리가 아닐까 싶은데요, 번역 PM은 스스로 번역하거나 감수를 하지는 않지만, 전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품질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툴과 솔루션을 활용해 품질 오차 범위를 최대한 줄이려 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캣툴을 활용해 통일성을 유지하고, TMS를 활용해 번역사/감수자를 선정하고, 번역 품질에 대한 평가 값을 통계자료로 만들어 추후 프로젝트 진행에 참고할 수도 있죠. 번역 품질이란 완전한 오역이 아닌 이상, 고객의 언어적 취향을 많이 반영합니다. 한국어도 같은 뜻을 화자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것처럼, 외국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고객에 대해서는 통일성을 유지하거나 번역사의 스타일을 평가해 기록하는 것이 중요한 점이고요.
물론 그래도 클레임은 항상 발생합니다.^^;; 클레임이 발생했을 때는 전 과정을 재검토함과 동시에 번역물을 재작업하고 클레임 재발 방지를 위해 온 신경을 쏟습니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게 품질 관리인 것 같습니다.
Q.
평소 워라밸은 어떤 편인가요? 아무래도 번역은 해외에서 의뢰가 오는 경우도 있을 테니 꼭 정해진 근무 시간에만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기본적으로는 9 am – 6 pm으로 근무합니다. 해외에서 의뢰가 오는 경우도 있지만, 국내 시간에 맞추어 일하기 때문에 새벽에 대응하거나 하는 경우는 드문 편입니다. 회사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저희 회사는 국내의 일반적인 근무 시간대를 준수합니다.
워라밸은 좋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ㅎㅎ;; 저희는 물건을 납품하는 직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납기일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에는 정말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합니다. 그것을 모두 조율하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항상 업무 시간이 지날 때가 많고, 번역사분들도 일하는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에 퇴근 이후에도 연락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서도 프로젝트마다 챙겨야 하는 보고서 작업, 그 외 서류 작업 등등… 제가 많은 프로젝트를 핸들링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24시간이 모자랍니다.
Q.
번역 업계 종사를 희망하는 사람 중에는 막연하지만 번역 PM을 꿈꾸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경력자로서 번역 PM에게 꼭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 가지를 뽑자면 사고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그 모든 과정에는 항상 문제가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단순히 고객의 품질 불만족 뿐만 아니라, 번역 쪽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작업 파일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아니면 견적 부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두려워하기 보다 상황을 파악하고, 생각하고, 논의할 수 있는 능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스스로 해결 방안까지 도출할 수 있다면 정말 좋지만, 처음부터 해결이 가능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거쳐 문제해결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Q.
평소 업계 소식을 받아보는 채널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업계 동료분들과의 모임 같은 것이 있는지요?
업계 소식은 다양한 채널로 받아보는 편입니다. 현직자들의 모임 같은 것은 없어서 주로 비즈니스 매거진 등을 통해 번역 업계 뉴스를 받아보고 있고, 그 외 해외 번역 회사들에서 제공하는 웹진 등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현직자 모임이 있다면 참여하고 싶네요.
Q.
일부에서는 번역 업계를 사양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업계 종사자로서 앞으로의 번역 시장, 번역 업계는 어떨 것으로 예상하는지요?
전 오히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 산업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단순히 사람이 번역해서 문서화하는 산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사양 산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보기술 발전과 더불어 번역 산업 또한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미래에 기계 번역이 휴먼 번역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른다고 해도 번역 산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그러한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과정과 그 이후에도 사람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입니다.
지금도 기계 번역을 개발하는 데에 수많은 번역 산업 관계자들이 작업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기계 번역이 대체할 수 없는 분야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기계 번역기에 쌓이는 데이터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데이터를 가공해 유의미한 값을 찾아낼 수 있는 것도 번역 산업 종사자 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전 세계 번역 시장은 매년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양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해외에서는 아직도 번역 스타트업 인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등, 그 규모를 확대하는 모습입니다. 사양 산업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게 만든 인공지능의 발달을 이미 해외에서는 흡수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인공지능 기술이 중요시되는 만큼, 저는 그 흐름이 우리나라 번역 산업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번역 PM은 무엇이다’라고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가장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만…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번역 PM은 ‘항해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라는 하나의 큰 배를 운항하면서, 조타수에게 방향을 지시하고 운항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하는,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PM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콘텐츠는 지콘스튜디오에서 레터웍스로 이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