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과 번역, 흔히 쓰는 말이지만 이 둘의 차이를 모르고 혼용하여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역과 번역을 모두 하는 통번역사도 많죠. 하지만 사실상 이 둘은 용어 자체뿐만 아니라 업무의 성격과 필요한 자질, 작업 환경 등 사실 언어를 사용한 작업이라는 것 외에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먼저 통역과 번역의 정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영어로는 Interpretation과 Translation, 일본어로는 通訳(통역)와 翻訳(번역), 중국어로는 口译(구역)와 笔译(필역)이라고 합니다. 한국어 이외에도 언어별로 통역과 번역이 구별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역이란 ‘말이 통하지 아니하는 사람 사이에서 뜻이 통하도록 말을 옮겨 주는 것’, 번역이란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사전적 의미로 보았을 때 이 둘은 ‘말’과 ‘글’이라는 서로 다른 대상을 다루는 일입니다. “글을 읽으면 말이고, 말을 쓰면 글 아니야?”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입으로 전하는 ‘입말’과 글로 하는 ‘글말’은 같은 의미를 표현해도 각각 다른 용어를 쓰는 경우가 많으니 글과 말이 반드시 같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문어체와 구어체가 존재하는 이유겠죠.
* 국립국어원 해설
그럼 구체적으로 통역과 번역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1. 결과물의 휘발성 유무
아마 통역과 번역의 가장 큰 차이점이 결과물일 것입니다. 특히 결과물이 1회성이냐 영구 보존되느냐 하는 점 때문에 통역과 번역이 많은 부분에서 달라지게 됩니다. 통역은 말로 전달하므로 그만큼 휘발성이 강합니다. 그때 그때 이해를 돕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역사의 통역에 사소한 문법적 오류나 필러(ex. 음, 그, 저)가 있어도 이해 자체에 문제가 없다면 어느 정도는 허용됩니다. 하지만 번역은 그 결과물이 종이나 파일 어느 형태로든 남기 때문에 오타나 문법적 오류가 눈에 띄게 됩니다. 따라서 번역사들은 번역 후 작업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통역사들은 한 번의 통역을 위해 사전 준비에 오랜 시간을 들인다면, 번역사들은 최대한 완벽한 번역물을 만들기 위해 검수와 윤문에 공을 들입니다.
2. 통역사와 번역사의 성향과 자질
사실 통역과 번역을 겸하는 경우도 많지만, 본질적으로 통역과 번역이 요구하는 자질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통역을 하는 사람과 번역을 하는 사람은 각자가 풍기는 이미지도 조금 다릅니다. 물론 요즘은 화상이나 컨퍼런스 콜을 통한 통역도 많이 하지만 기본적으로 통역은 사람과 대면하여 이루어지는 작업인 만큼 활동적인 면이 있습니다. 또한 순차통역과 동시통역 모두 화자의 발화와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에 순간적인 판단력이 중요합니다. 반면, 번역은 용어 선택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만큼 지구력과 끈기가 필요합니다. 경우에 따라 마땅한 용어를 찾느라 하루 종일 한 문장만 고민하기도 합니다. 둘 모두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지만 입력과 출력에 차이가 있는 만큼 필요한 역량도 다릅니다.
3. 의뢰인, 통번역 회사와의 관계
의뢰인과 통역사, 번역사 사이의 직접적인 의뢰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통역과 번역 모두 통역 회사와 번역 회사라는 에이전시를 통해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통역과 번역을 겸하는 통번역 에이전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통역과 번역의 가장 큰 차이는 의뢰인과의 직접적인 만남 유무라 할 수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통역은 행사 현장 내지는 의뢰인이 있는 곳에서 하기 때문에 통역 회사를 통한 프로젝트여도 의뢰인과의 대면이 불가피합니다. 물론 통역 회사와도 직접 만나거나 대면할 기회가 종종 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작업을 함께 할 경우 에이전시와 통역사 사이에도 유대가 쉽게 형성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PM이 통역 현장에 와 있다면 통역사 입장에서 의뢰인과의 소통이 보다 수월하고 현장의 돌발 상황 처리도 유연하게 대처가 가능합니다. 통역 전 사전 준비 시에도 자료 확보를 위해 PM과 자주 소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번역은 번역 회사의 내근직 번역사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본인이 편한 장소에서 작업을 합니다. 또한 번역사는 번역 회사로부터 프로젝트의 배경 정보와 원문 등 필요한 내용만 제공받아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번역 회사 관계자 내지는 PM과 직접 만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의뢰인과 만날 일은 더더욱 없습니다. 따라서 번역사와 번역 PM, 번역 회사 사이의 관계가 발전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립니다. 서로 주고받는 이메일과 같은 서면 형식의 소통에 유의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단순히 보면 통역과 번역은 외국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모국어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통역은 모국어를 외국어로, 외국어를 모국어로 계속 옮겨야 하기 때문에 둘 모두 잘 해야 하는데, 번역은 정해진 어느 한 방향으로만 옮기기 때문에 번역될 언어를 잘하면 될 거라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실 모국어와 외국어 어느 하나만 잘 해서는 제대로 된 번역을 할 수 없습니다. 어느 방향이든 원문의 이해와 정확한 번역문 도출이 함께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번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비슷하지만 다른 통역과 번역 업무에는 각각에 맞는 통번역사의 자질이 필요한 만큼 업무 특성을 고려한 적절한 지원도 필요합니다. 통역과 번역의 성질이 다르듯, PM 역시 한 사람이 이 둘을 겸하더라도 각각의 프로젝트에 요구되는 능력에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고 통역과 번역, 더 나아가 통역사와 번역사에게 필요한 지원과 관리가 더해진다면 더욱 이상적인 프로젝트 관리가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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