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재미있는 사진을 한 장 보았습니다. '매생이 전복죽'이라는 메뉴 안내판 인데, 그 아래 적힌 영문 표기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every life is ruined'? 처음에는 명언 글귀인 줄 알고 유심히 들여다 보았더니 '매생이 전복죽'의 영문 표기 였던 것입니다. 오역도 이렇게 정성스런 오역이 있을까요? 번역업계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고치고 싶어 안달이 나는 순간일 듯 합니다. 이러한 생활 속 오역을 볼 때마다 실소와 함께 번역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글로벌 시대 답게 요즘은 식당의 메뉴판, 관광지의 안내 표지판 등 많은 곳에서 외국인을 위한 각종 언어로 번역문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번역문들을 보다 보면 피식하고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가장 흔한 예가 식당 메뉴판일 것 같습니다. '곰탕'을 'bear soup'으로 번역한 경우, '두부'를 '頭部(머리)'로 번역한 경우 등 비슷한 예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번역은 의미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문화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어 2015년부터 시작해 정부 차원에서 올바른 한식 메뉴 표기를 표준화하고 있습니다.
비단 메뉴판 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명 역시 어떻게 표기할 것 인가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강' 이죠. 'Hangang', 'Han River' 등 한강을 어떻게 표기할 것 인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 역시 지금은 정부 차원의 표준화 덕분에 어느 정도 통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국립국어원에서는 2013년부터 '공공용어 번역 표준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역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올바른 방법으로 외국인에게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덕분에 필요하면 누구나 다양한 공공용어, 한식명, 문화재명 등의 표준화된 표기법을 검색할 수도 있습니다.1
이처럼 정부에서 공공용어 번역의 표준화를 추진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안내의 수준을 넘어서 국가의 글로벌화나 이미지 제고 와도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고유 명사를 외국어로 바꾸는 과정에서는 또 다른 논쟁이 존재합니다. 바로 고유 명사 발음을 그대로 옮겨 번역할 것인가, 뜻을 알 수 있게 풀어서 번역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비빔밥' 같은 경우는 이미 워낙 유명한 한식이기 때문에 영어로 옮길 때 'bibimbop'과 같이 발음을 옮기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하지만 보다 덜 알려진 한식인 '곰탕'은 영중일 세 개 언어의 표기법이 모두 다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제공하는 공공용어 번역 정보에 따르면, 영어는 ‘Beef Bone Soup’ 또는 ‘Gomtang’, 중국어는 ‘牛骨汤(우골탕)’, 일본어는 ‘コムタン(곰탕)’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발음과 의미 어디에 중점을 두고 번역을 하느냐는 각각 장단점이 있습니다. 발음을 그대로 옮길 경우에는 한국어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 특정 단어를 말했을 때 한국인이 바로 그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신 외국인이 해당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단번에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와 반대로 의미를 옮겨서 번역할 경우, 즉 곰탕을 중국어로 ‘우골탕’으로 번역한 경우에는 정확한 한국어 발음은 알 수 없지만, 이 표기를 보자마자 어떤 음식인지 그 음식의 특징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국어는 한자라는 표의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어나 영어, 일본어와 같은 표음문자처럼 모든 발음을 자국 언어의 자음과 모음으로 옮기기 어려워 의미를 전달하는 표기 방식을 쓰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음식 이름 하나도 어떻게 번역을 할지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이유는 번역이 바로 언어라는 장벽을 사이에 둔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번역 품질이라는 작은 범위에서 보더라도 기계 번역 역시 이러한 고유명사나 공공용어에서 아직 많은 오류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기계 번역 결과의 품질 향상에도 결국은 사람이 정한 표준화된 번역어의 데이터베이스가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매번 검색을 통해 확인을 하다 보면 출처에 따라 다른 번역어가 제시되기 때문에 통일성이 떨어질 수 있는데, 지콘스튜디오 번역사전(Translation Dictionary, TD)처럼 기존에 번역된 문서를 데이터화하여 사용하면 어렵지 않게 일관된 용어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2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널리 퍼진 요즘 시대에는 다른 국가와의 교류가 잦은 만큼, 정확하고 표준화된 번역어가 언어의 장벽을 제거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배려를 나타내는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이것이 결국은 국가 이미지에도 결부되는 것이겠죠.
1 국립국어원 공공언어통합지원 (https://publang.korean.go.kr)
*해당 콘텐츠는 지콘스튜디오에서 레터웍스로 이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