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까지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한 번역 분야에서 번역 회사가 생각해봐야 할 것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번역계의 구성원은 번역 회사만이 아닙니다. 어쩌면 번역이라는 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번역사 역시 무한경쟁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대상자 입니다. 번역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문턱이 낮아졌고, 누구나 하고자 하는 마음과 일정 수준의 실력만 있으면 번역사로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양적 공급이 많아지게 되면, 대신 인력 간 수준 차이는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의뢰인 입장에서는 (번역 의뢰를 하고 결과물을 받기 전까지, 혹은 그 결과물을 실제 적용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선택한 번역사의 실력을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번역은 별도의 국가 공인 자격증도 없고, 외국어를 할 줄 알면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일입니다. 번역사는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전문직처럼 비전문가와의 차별화가 쉽지 않은 이유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번역사가 귀하던 시대는 갔다.
고려·조선시대에는 '사역원(司譯院)' 등 별도의 관청을 두어 외국어의 통·번역을 국가 차원에서 관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전문직으로 대우를 받았고, 공급 과잉 현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해외여행과 유학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에도 그랬습니다. 외국어를 하는 사람이 적어 번역을 할 수 있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기계 번역기가 바로 번역을 해줄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그 실력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습니다. 기계 번역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 번역사들 사이의 경쟁 역시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무한경쟁 시대에 들어서면서 번역사도 자신만의 전문성과 실력을 어필하고 발전시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더욱 중요해진 언어 실력
이를 위해 무엇보다 모국어와 외국어 모두 탄탄한 기본실력이 꼭 필요합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외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통·번역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아진 만큼, 실제 그 실력은 천차만별입니다. 제대로 된 번역 일을 해보기 전에는 해외 체류 경험으로 습득한 외국어 실력이면 언제든지 번역사로 투입이 될 수 있다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막상 머릿속에서 이해됐던 것을 글로 풀려고 하면 쉽게 출력이 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글로 재생산해내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자신이 이해한 바를 매끄럽게 옮기기 위해서는 모국어와 외국어 모두 기반이 단단해야 합니다. 단지 회화 실력만으로 그 간극을 메우기 힘들 뿐더러 전문 번역으로 갈수록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
언제나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번역사라는 업 자체가 계속해서 공부하고, 새로운 분야에도 열려 있어야 합니다. 번역하는 과정 역시 연구하고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죠. 하지만 이제 막 번역의 길에 접어든 사람이나, 앞으로 번역사를 꿈꾸는 사람 중 일부는 '언뜻 보기에 수입이 괜찮은 것 같아서', 또는 '집에서 편하게 일 하는 것 같아서' 이 길을 택하곤 합니다. 업 자체에 대한 의지나 적성이 아닌 돈 등을 목표로 시작한 일은 오래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모든 일에는 성과를 얻기 위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듯 꿈 꾸던 멋진 번역사가 되려면 그에 걸맞는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투자가 바로 공부하고, 배우는 것 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범위를 확장하지 않고 아는 것만 갖고 할 수 있는 번역은 갈수록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번역은 가장 먼저 기계 번역에 의해 대체되고 말 것입니다.
무엇보다 나만의 전문성 갖기
마지막은 새로운 도전과 전문 분야의 확보입니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부지런히 경험해 보고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부지런히 확보해야 합니다. 그나마 기술과 트렌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기에 본인이 얼마나 부지런한가에 따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나만의 전문 분야를 갖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실 자신만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꾸준히 그 길만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것을 나만의 전문 분야로 삼을 수 있을지, 어떤 전문 분야를 선택해야 오래 일할 수 있을지 등등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한 분야의 전문 번역사로 활동하는 분들 중에도 우연한 기회로 시작해 자신의 전문 분야가 된 분들도 적지 않죠. 또한 언어에 따라서는 번역 수요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은 관계로 특정 분야만 골라서 일하기 힘든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우연히 마주칠지 모르는 전문 분야만 무턱대고 기달릴 수도 없고, 오늘부터 어떤 분야의 번역만 해야지 하고 마음먹는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우선은 자신이 관심을 가진 분야에서부터 시작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금융이나 IT 같은 전문분야가 아니라도 자신이 평소에 즐겨온 취미 활동, 특정 장르의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또는 어떤 운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이미 그 분야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만의 전문 분야로 만들기가 수월할 수 있습니다. 또는 전문 번역사 중 아예 다른 일을 하다가 그 분야의 번역사로 전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약대 출신의 의·약학 전문 번역사, 변호사 출신의 법률 전문 번역사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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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진정한 전문 번역사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해외에서 학업을 마쳤다거나, 오랫동안 외국에서 지내다 왔다든가, 또는 전문 번역 교육을 받았다는 것만 내세워서는 절대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번역이라는 업 자체 뿐만 아니라 특정 분야의 구체적인 번역 성과, 그리고 그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기울여 온 노력, (가만히 앉아서 의뢰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적극성과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현직 번역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번역사가 되길 꿈꾸는 분들 모두에게 해당하며, 이 일을 지속하는 한 꾸준히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해당 콘텐츠는 지콘스튜디오에서 레터웍스로 이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