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인턴~~
최근에는 이름보다 더 많이 불리다 보니 ‘이 정도면 원래 내 이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회사에서 나의 공식 명칭이다.
올해 내 나이 30. 졸업 후 큰 뜻을 품고 무려 반년 간 어학연수까지 다녀오고, 추가로 반년 더 서러운 취준생 생활을 견디고 나서야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동안 지금의 인턴 자리에라도 합격하기까지 온갖 취업 관련 스터디는 다 해본 것 같다. 학생 때부터 해외 마케팅을 해보고 싶었기에 (어학연수까지 다녀왔지만…) 어학에 부족함을 느껴 토익, 회화, 스피치 등 온갖 모임을 섭렵했다.
다행히도 좁은 취업문을 뚫은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그래도 그동안의 고생이 조금은 보상받은 것 같아 뿌듯함 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출근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됐다. 언제 끝날지 몰라 더 암울하게만 느껴졌던 구직 기간은 지금의 회사 생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단 것을…
최근 나의 주 업무는 번역이다.
어문학 전공에 어학연수까지 다녀온 해외파 인턴이라 알려지면서 자연스레 부서 내 번역 관련 업무는 대부분 내 차지가 되어버렸다. 요즘 들어 ‘내가 번역가로 취업 했었나?’ 스스로도 헷갈릴 지경이다. 큰 맘 먹고 다녀온 어학연수 덕분에 취업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내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스런 짐이 될 줄이야 ㅜㅜ
모든 회사 일이 그렇듯, 번역 업무도 바쁠 때 한 번에 몰려든다. 해외 거래처와 주고 받는 비지니스 이메일부터 각종 계약서, 보고서, 기타 등등… 최근에는 스스로도 ‘나는 인간 번역기다.’ 생각하며 매일매일 맡겨진 번역거리들을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번역 업무는 번역만 한다고 끝이 아니다. 혹시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꼭 검수까지 거쳐야만 한다. 때로는 내가 번역해야 할 문서가 몇 십장이 될 때도 있다 보니 그런 날은 한 숨만 나온다.
그럼에도 특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초벌 번역한 문서가 제대로 검수도 안 된 경우이다. 가끔 내 수고를 덜어준다고 번역기를 돌려서 줄 때도 있는데, 간혹 문서 내용이 번역기와 궁합이 맞지 않아 오역이 터져나올 때가 있다. 물론 나도 사전을 찾아가며 더듬더듬 문장을 바꾸는데 급급한 수준이긴 하지만, 그럴 때면 정말이지… 정말… 정말… 울고 싶다 ㅠㅠ
오늘은 아침부터 배부장님이
“설인턴~”하며 나(aka 인간 번역기)를 찾으신다. “해외 거래처에 이메일을 보내야 하는데… 내 생각대로 표현하는게 영 어렵네. 일단 번역기 돌려가며 써 보긴 했는데 그래도 좀 어색하네. 이거 빨리 보내야 하는 메일이라 설인턴이 좀 도와줘야겠어.”
일단 내 자리로 돌아와 살펴보니 (보나마나 엉망일 줄 알았는데) ‘오! 의외로 나쁘지 않네. 최근 번역기가 많이 좋아지긴 한 것 같다.’ 그런데 중간에 한 문장이 눈에 밟힌다. “I use it at the request of Daniel Lee.” ‘응? 다니엘 리의 요청으로 사용했다고… 왠지 수상쩍다.’ 역시나 원문을 확인해보니 “다니엘 리의 요청으로 씁니다.”라고 되어있다. 배 부장님께 잘 번역되어서 그대로 보내도 괜찮겠다고 말씀드렸다면…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요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내게 그나마 한 줄기 빛이 되어준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바로 ‘지콘스튜디오 비교번역’이다. 번역할 내용을 입력만 하면 구글, 파파고 등 유명 번역기들의 번역 결과를 한 곳에서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얼마전까지 2~3개 번역기를 동시에 띄워 놓고, 일일이 번역할 문장을 입력해가며 일했던 걸 생각하면… 나를 괴롭히는 번역 업무에 소요되는 시간이 절반은 줄어든 느낌이다.
지콘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다니엘 리의 요청으로 씁니다.’를 입력하고 [번역하기] 버튼을 클릭했다. 역시나 번역기에 따라 서로 다른 번역 결과를 보여준다.
이렇게 오늘은 의도치 않게
배부장님은 구글 번역기만!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나는 비교 번역을 사용해 구글의 ‘I use it at the request of Daniel Lee.’ 대신 파파고의 ‘I'm writing at Daniel Lee's request.’를 선택했다. 다만 흐름상 ‘다니엘 리’의 요청이란 점을 강조해야 할 것 같아 ‘I'm writing at the request of Daniel Lee.’라고 살짝 수정해서 번역했다. 이 외에도 어색해보이는 몇 개 문장들만 같은 방법으로 수정해서 돌려드리니 무뚝뚝한 배부장님도 “설인턴~ 업무 처리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네.”라며 칭찬까지 하신다^^
이렇게 회사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나! ‘설인턴 aka 인간 번역기’의 생존 안내서 제1장이 완성됐다. #1. 번역기 하나만 믿지 말것! 비교 번역으로 더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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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정글로 출근하는 인간 번역기를 위한 생존 안내서'는 평범한 직장인이 번역과 관련해 회사에서 겪을 만한 상황을 가정한 내용으로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연관이 없습니다.
*해당 콘텐츠는 지콘스튜디오에서 레터웍스로 이관되었습니다.